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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25 청동기 시대
  2. 2019.04.25 신석기 시대
  3. 2019.04.21 선사시대
  4. 2019.04.18 시나브로, 하루를 시작하며~ 1

저녁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이번시간에는 청동기시대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어떤 용도의 돌 일까요? (네이버)

 

 청동기의 전래와 보급

 

인류가 처음으로 금속기의 재료로 사용한 것은 구리였습니다. 그런데 구리는 너무 물러 점차 주석과 아연을 섞어 단단한 청동도구를 만들어 쓰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청동기를 사용하였구요, 중국에서는 4,500년 전 쯤에서 청동기를 사용하고 정치조직을 갖춘 초기 국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중국 랴오등 지역에, 3,300년 전 무렵에는 한반도에 청동기가 전래되었다. 일찍이 문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무기와 제사용구, 농기구, 그리고 다양한 생활도구를 청동기로 만들었으나, 중국 랴오등과 한반도에서는 재료가 충분하지 않고 만들기도 어려워 주로 지배층이 무기나 장식품을 청동기로 제작 하였다.

2019/04/21 - [분류 전체보기] - 한국의 선사시대의 역사

2019/05/08 - [분류 전체보기] - 형법아, 놀자 (2)

2019/05/09 - [분류 전체보기] - 형법아, 놀자 (4)

 

대표적인 청동기가 칼날 모양이 악기 비파 모양을 닮은 비파형동검이다. 비파형동검은 중국 동북부의 랴오닝성과 지린성에서 두루 발견되고, 랴요등 지방의 비파형동검이 한반동에 전래되어 청천강 이북 지역과 충청,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출토 된다.

 

비파형동검과 함께 청동 도끼와 끌, , 화살촉이 도구와 무기로 사용되었고, 청동 단추와 방울, 거친무늬거울 등을 창식품이나 제사용구로 만들었다. 또한 간석리로 만든 검과 화살촉이 널리 쓰였으며, 농기구를 비롯한 생활도구는 여전히 돌이나 나무로 만든 것이 대부분었다.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칼날 모양이 더욱 세련되고 날이 좁은 세형동검으로 발전하였다. 비파형동검은 위세품의 성격이 강했으나 세형동검은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세형동검은 한반도 청천강 이남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어 한국식동검이라고도 부르며 세형동검은 철기와 함께 발견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세형동검을 사용하던 시기를 초기 철기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동기시대에는 밑바닥이 납작하고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가 주로 사용되었다. 중국 랴오등과 한반도 서북 지역에는 항아리 모양의 미송리식토기와 팽이형토기가 분로 하고,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다른 토기가 분포한다. 특히 청동기시대 후기에 밑이 납작하고 긴 달걀형의 몸체를 가진 송국리식토기가 충청과 전라, 경상도 지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 이외에도 입술 부분에 덧띠를 붙인 토기, 검은 간토기 등을 사용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예전에 사극을 보면 장군들이 청동기 그릇에 술과 안주를 먹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던데요, 혹시 중금속도 같이 먹지 않았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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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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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간에는 신석기 시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네이버 )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생활

 

그러니까, 12천 년 전쯤에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지구의 환경이 오늘날과 비슷해져서 사람들이 이 무렵부터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했는데 이때부터를 신석기시대라고 합니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기온이 상승하면서 신석기인의 식물 채집이 증가 하고 사냥과 어로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사람들은 늘어난 식량을 효과적으로 운반하거나 저장하기 위해 또는 음식을 끊여 먹기 위하여 토기를 발명합니다.

2019/04/25 - [분류 전체보기] - 청동기 시대

2019/05/05 - [분류 전체보기] - 형법과 일상생활

2019/05/07 - [분류 전체보기] - 형법아, 놀자! (1)

 

제주 한경 고산리에서 약 1 만 년 전에 제작한 토기와 석기가 발견 되었구요, 육지에서는 양양 오산리에서 발견된 덧무늬토기가 가장 오랜된 것이죠. 신석기시대 초기에 이른 민무늬와 덧무늬, 눌러찍기무늬 토기를 만들었고 중기와 후기에 밑이 뽀족하거나 납작한 모양으로 다양한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게 됩니다.

 

신석기시대 중기인 약 5500 년 전 무렵부터 농경과 가축의 사율이 시작되었고, 신석기시대 후기에는 생산 경제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긴 했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채집과 사냥, 고기잡이가 경제생활의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바닷가나 강가에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조개류를 채취하여 먹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신석기시대 유물은 주로 강가와 바닷가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석기를 갈아 화살이나 창 등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하였고, 석기와 뼈 등을 조합하여 만든 낚시, 돌과 뼈로 만든 작살, 그물 등으로 물고기를 잡았고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었다.

 

농경의 시작 이후 간석기로 괭이, 보습, 낫 등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식량 가공 도구로서 갈돌과 갈판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사람들은 한곳에 오래 머물며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땅을 파서 그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움집을 지어 살게 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규모로 보아 4~5명 정도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정착생활로 인구가 늘어나자 같은 핏줄의 씨족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었으며 같은 씨족끼리는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공동으로 식량을 채집하거나 생산하고 분배하는 공동체생활을 했으며 연장자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공동체를 이끌게 됩니다. 그래서 씨족공동체에서 여성이 토기를 만들도 농사를 짓거나 또는 옷을 만드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신석기시대를 모계씨족사회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신석기시대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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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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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카테고리 없음 2019. 4. 21. 22:07

  역사에 대해 최근에 들어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관심이 생겨서 다시 공부를 해 봤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선사시대 중에서 구석기시대에 대해서부터 시작합니다.

2019/04/25 - [분류 전체보기] - 신석기 시대

2019/04/25 - [분류 전체보기] - 청동기 시대

 

주변경치가 초록으로 바뀌고 있네요!

 

구석기시대의 생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60~50만 년 전부터이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 등장 이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을 우리 민족의 직접 조상으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 투수, 네안데르탈레시스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12천 년 전까지는 돌을 깨거나 떼어 내어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이 시기를 이름하여 구석기시대라고 부른다. 구석기시대는 25~20만 년과 4만 년 전을 경계로 전기와 , 후기로 구분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전기에는 큰 석기 한 개를 가지고 다양한 용도로 하용하다가 점차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주먹도끼 또는 몸돌에서 떼어 낸 조각을 가지고 긁개, 자르개, 밀개 등의 정교한 도구를 만들었다. 주먹도끼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래,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슴베찌르개는 구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유물로서 돌날의 끝 부분을 잔손질하여야 나무자루에 장착할 수 있는 슴베를 만들어 주로 사냥도구로 사용하였다.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열매를 채집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무리 지어 먹잇감을 찾아 이동하며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생활하였고 따뜻한 계절에는 잠시 강가에 막집을 짓고 거주하기도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구석기시대 유적은 줄 석회암 동굴과 바위 그늘, 강가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상원 검은모루, 제천 점밀동굴,,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등이 있다.

 

 구석기시대 중기에 한반도에 사는 구석기인이 비로소 마찰열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불에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소화를 잘 시키고, 단백질도 보중 할 수 있었으며, 이 결과 먹을거리가 다양해지고 질병이 줄어들어 수명이 길어졌다. 또한 불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취위와 어둠을 이겨 내고 맹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의 사용 이후 인류의 지적 능력이 크게 발달하여 소리를 질러 의사소통을 하거나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나름대로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머릿속에 담긴 생각이나 꿈 따위 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으로 새기기 시작하였다.

 

 공주 석장리와 단양 수양개에서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이 발견되었고,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는 사람 얼굴을 새긴 사슴뼈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예술품에는 구석기인이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신석기시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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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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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라는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어제의 또 다른 이름인가?

아니 시간은 연속해서 흐르지만 사람들이 편하게

시간 단위를 만들어서 쓰고 있기 때문에

24시간이 지나면 하루가 지나고 그 하루는 어제가 되고

오늘이라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라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오늘에 보면 내일이지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늘이 된다.

자, 모두들 오늘 하루를 만끽하 길 바란다!

 지난 간 오늘은 어제가 되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하루는 흘러갈 것이다.

후회는 안 할 수가 없지만 덜 후회하는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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